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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머니즘(탈인간주의)시대의 음악 
제33회 광주음악제를 연출을 마치고... 
광주음악협회수석부회장 유형민 


현대인들에게 이제 제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인공지능, 포스트휴머니즘 같은 용어들은 정확한 개념을 알고 있던지, 모르고 있던지, 이미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한 개념이 정확히 적립 되기도 전에, 다른 새로운 이론과 개념이 실생활과 뒤엉켜 정보를 제공하는 요즘, 뒤쳐지지 않고 따라가기만도 숨 가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학계와 일상이 함께 연동되어 살아간 적이 있었나 싶게 인간의 삶 구석구석을 기계와 문명이 혼재되어 파고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허구나 관념적인 구호에 머물지 않고 이미 구체적이고도 새로운 현실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개선하려는 신념이나 운동을 뜻한다고 한다. 신봉자들은 생명과학과 신생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인간의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로인해 인간 이후의 존재인 '포스트휴먼(posthuman)'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기계에 의한 인간의 시대, 기존의 인간이 사라지고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다고 믿는 개념이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시도는 위대한 문학작품과 역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늙은 박사 파우스트는 마르그릿트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다. 또 중국의 진시황제 역시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맸듯이, 인간은 더 오래, 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 스스로 인간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들은 기계의 발전과 생명과학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이제 포스트휴먼 이라는 새로운 종의 출현까지도 예고한다.

예술은 어떠한가? 포스트 휴머니즘이 음악에서 어떤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급속도로 우리 현실 속에 다가와 있다. 비대면 공연이 주가 되어가면서 순수공연예술보다는 미디어나 컴퓨터와 작업을 거친 영상물들이 기존 공연을 대체하여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메타버스를 통한 가상 인간의 등장으로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과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필자는 얼마 전 끝난 제33회 광주음악제의 총연출을 맡았다. 이번 음악제의 주제는 “Together, 경계를 넘어”로 10월 9~11일, 3일간 공연되었다. 이번 주제는 모든 분야, 특히. 미디어아트, AI (인공지능)과 순수예술이 협업 가능한가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특히. 음악제 두 번째 날인 10월 10일에는 “내일의 음악을 마주하다!”라는 테마로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에서 우리나라 AI (인공지능) 음악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광주과학기술원, GIST 안창욱 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의 AI작곡가 ‘EvoM’을 개발한 정재훈 박사가 AI 작곡 시연과 관련된 음악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이 세미나는 포스터에 첨부된 QR코드로 사전 신청을 한 지역의 예술인과 학생, 시민 등이 모여, 인공지능이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 내는가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딥러닝이 학습된 컴퓨터에 몇 개의 명령어를 입력하자, 아주 간단하게 음악을 나들어 내기 시작했다. 물론, 완성도를 논하거나 연주력을 얘기하자고 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세미나 도중, 이곳저곳에서 탄식과 감탄, 뜻 모를 웃음들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필자는 세미나를 지켜보면서 묘한 질투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순간을 느꼈다. 어떻게 기계는 이렇게까지 인간을 빨리 학습 할 수 있었을까? 아직은 상업적인 음악이나 미디음악 작곡과의 협업이 더 현실적으로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 속도라면 순수예술 창작 분야 역시도 어느 수준에 오르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미나 도중 드는 의구심들을 어쩔 수 없었다. 과연 인간이 아닌 AI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음악 창작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가? AI가 모방성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는가? 표절과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만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세계를 예술이라는 이름의 경지로 구현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필자가 연출을 하며 고민했던 점은 아직도 모든 것은 인간의 손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여도, 공간과 조명, 무대의 배치까지 인간의 정확한 의도가 개입되지 않는 한, 아직은 능력 좋은 “회색기계”일 뿐이었다. 인간의 손과 노력들이 더해져 공간을 만들어주고 빛을 주었을 때, 비로서 ‘기계’는 ‘연주자“가 되어 우리에게 화답하기 시작했다. 이날 공연에서 AI 작곡가의 곡을 AI 피아니스트와 인간 피아니스트가 대결 하는 공연이 있었다. 아직은 피아노에 미리 프로그래밍 된 컴퓨터와 기계를 부착하여 자동연주를 하고 이것을 인간 피아니스트가 받아 시간차로 대결하는 구도로 연주했다. 언젠가 스스로 생각을 해내는 인공지능 연주가가 구현된다면 실시간으로 즉흥 연주가 가능한 날도 머지 않았으리라.

다시 원 주제로 돌아가서,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은 회의적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고 감상하는 것의 행위를 즐기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를 믿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개념과 시대가 인간을 뛰어넘거나 압도하기보다는 물질과 문명에 속박당한 인간 중심주의가 아닌, 인간과 환경을 위해 기계와 문명이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베토벤의 합창을 인간합창단이 연주하던, 컴퓨터 안에서 합성된 A.I 합창단이 연주하던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도와주되, 인간 역시 인간됨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는 성찰력을 끝까지 지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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