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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에 휘말려 3년 세월이 흘러가네요. ‘금세 끝나려니’ 하며 느긋했던 맘에 조바심이 일더니 이젠 ‘마스크를 벗어도 옛날로 돌아가기는 틀렸구나’ 싶은 심정입니다.
그동안 세상의 변화가 놀랍습니다. 익숙했던 일상, 오랜 삶의 방식이 뿌리째 흔들렸어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모여서는 안 되는 게 당연하다 못해 ‘옳은 일’이 되었군요. ‘여럿이’가 아니라 ‘개인’으로 낱낱이 존재할 때 비로소 안전할 수 있는 조건이라니! 현대문명을 뽐내왔던 21세기 최첨단 도시들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무대 오랑시가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
혼돈을 겪으며 별별 생각이 들었지요. 지구촌 곳곳 감염자는 폭증하고 사망자들이 널부러진 광경도 끔찍했습니다. 그런 뉴스들이 실시간 중계될 때마다 불안과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유포되었지요. 아! 몸으로 체감하는 공간에 사람이 모이는 전통적 ‘사회’는 해체되는가? 이대로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미래의 ‘사회’로 진입하는가? 우리는 혼란과 착오의 반복 속에서 순간순간 안전한 선택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였지요. 그러는 사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깊숙이 들어 와버린 겁니다.영상통화, 줌 회의, 화상수업, 드라이브 쓰루, 자동차극장, 배달음식, 무인 결제, 비대면 집회 …. 처음엔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부지불식간에 아주 자연스러워졌네요.
딸아이의 파티를 보니 눈이 확 뜨이더군요. 세상에! 대여섯 명이 각자 스마트폰과 PC 앞에 앉아 캔 맥주를 홀짝이며 수다도 떨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 겁니다. 거참! 삶의 방식 곧 문화가 바뀐 거지요. 대면 만남은 확연히 줄었지만 뉴스와 정보의 유통은 더욱 활발해졌구요. 신문, 방송보다 SNS, 유튜브에 접속하는 횟수도 압도적입니다. 어쩌면 공동체의 기능과 역할, 죽살이를 함께 해온 속성은 한층 강화된 거지요. 코로나19 팬데믹 터널을 지나오면서도 ‘사회성’은 결코 휘발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공고해진 셈이지요.
문화예술의 변화무쌍은 자못 경이롭습니다.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질 때문이지요.
중심이 사라지고 변방이 저마다 중심으로 두렷합니다. ‘오징어게임’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넷플릭스를 통해 순식간에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 모아 한국이 ‘문화중심’이 되었지요. 오랫동안 공고했던 중심들의 해체는 거센 조류입니다. 유럽의 파리, 미국의 뉴욕 같은 정거장이 별 소용이 없어졌어요. 세계 어디든 곧장 소통하고 교류하고 협업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광주문화재단도 지난해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정책포럼’에서 세계 여러 도시의 예술가들을 연결한 퍼포먼스를 펼쳐보였답니다. 광주가 중심이 되는 거지요.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과학기술의 진화가 가져온 문화예술의 혁명이지요. 광주시립교향악단이 베토벤을 불러 협연할 수 있고요. 먼 옛날의 노래, 그림, 시를 오늘의 무대로 호출해 콜라보, 융복합의 신세계를 연출할 수 있어요. 이런 변화는 인류가 생산하는 뉴스와 정보, 온갖 스토리의 총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즉각 유통되고 또 다양한 장르로 재창조 되는 과정에서 비롯됩니다.
문화웹진 ‘모타’의 창간 소식이 반가운 까닭입니다. 여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광주를 중심으로 상상과 창의의 샘물을 길어 올리고, 감상과 비평이 봇물처럼 흘러넘치는 꿈을 꾸어야지요. 아무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을 맞는 지성과 감성의 저수지, 팬데믹 시절을 지나며 치렀던 숱한 희생과 절망을 딛고 새 희망을 향해 힘차게 뛰어오를 지지대가 필요하지요.
전라도말 ‘모타’는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어떤 삶도 포용하자는 깃발 같아요. ‘모타’가 인간 존엄과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품어내는 웹진이 되어주길 바라며,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황 풍 년